조르디 사발 — 네 번의 삶
비올라 다 감바의 부활자, 그리고 '보편적 음악인'
2019년 봄, 장-피에르 마리엘(Jean-Pierre Marielle)이 죽었다. 고음악 팬들에게는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은둔자, 생트 콜롱브(Sainte-Colombe)의 영원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의 죽음을 다룬 짧은 부고는 1992년 『세상의 모든 아침』을 보러 간 어느 일요일을 떠올리게 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이 들려준 프랑스 비올라 다 감바 음악은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그냥 뇌우처럼 스친 것이 아니라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의 말처럼 음악이 뇌우 그 자체였다.
20세기 중후반까지도 비올라 다 감바 음악은 영국 비올 합주 음악과 바흐의 소나타 정도를 제외하면 고고학적인 관심이나 음악사 카탈로그를 채우는 것 이상의 진지한 연주회용 레퍼토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 마랭 마레(Marin Marais), 포르크래(Antoine Forqueray), 생트-콜롱브 같은 진짜 프랑스 고전 비올라 다 감바 레퍼토리의 재발견은 마치 말구유의 아기 예수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역에서 태어난 음악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파리도, 런던도, 베를린도, 빈도 아닌 바르셀로나 인근의 작은 카탈루냐 마을 이과라다(Igualada)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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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 수련시대
조르디 사발 이 베르나데트(Jordi Savall i Bernadet), 즉 조르디 사발은 여섯 살 때부터 동네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각종 악기의 만능 연주자였으며 자칭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이었지만, 마침내 그가 선택한 악기는 첼로였다. 사발은 첼로를 처음 들었을 때 태어난 이유를 발견한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사발은 1956년부터 1965년까지 바르셀로나 음악원에서 산토스 사그레다(Santos Sagreda)와 조젭 트로타(Josep Trotta)에게 첼로를 배웠다.
당시부터 사발은 고음악에 마음이 끌렸다. 바흐, 마레, 디에고 오르티스(Diego Ortiz)가 쓴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음악을 첼로로 연주했다. 진짜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게 되면서 사발은 다른 초기 음악 개척자들과 마찬가지로 원전 악보, 악기와 연주법에 관한 논문, 그리고 당대 연주자들이 쓴 글을 연구하며 독학했다. 이러한 과정을 사발은 마치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사발은 작곡가가 원래 가졌던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는 데 늘 관심을 기울였다. 일찍이 사발은 연주자는 막연히 영감에 의지해서만은 안 되고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반다 란도프스카(Wanda Landowska)의 제자이자 스페인 고음악계의 대부인 하프시코드 연주자 라파엘 푸야나(Rafael Puyana)가 사발이 고음악에 온전히 몰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던 초창기에는 스페인 고음악 개척자인 엔리케 히스페르트(Enrique Gispert)가 이끄는 아르스 무지카에(Barcelona Ars Musicae)에 자주 참여했다. 여기서 사발은 평생의 반려가 되는 소프라노 몬세라트 피게라스(Montserrat Figueras)를 만난다.
비올라 다 감바를 본격적으로 연주하면서 사발은 처음엔 빌란트 쿠이켄(Wieland Kuijken)에게, 나중에는 바젤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 Basiliensis)에서 아우구스트 벤칭어(August Wenzinger)에게 배우며 학위를 획득했다. 사발은 1973년부터 스콜라 칸토룸에서 비올라 다 감바 교수직도 맡았는데, 스콜라 칸토룸이 사발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학위도, 교수직도 아닌 일생의 동료들이었다. 1974년 사발은 스위스로 오면서 결혼한 피게라스, 류트 주자 홉킨슨 스미스(Hopkinson Smith)와 함께 에스페리옹 20(Hesperion XX)을 창단한다.
졸업과 동시에 바젤 스콜라 칸토룸의 만능 관악기 연주자였던 미셀 피게(Michel Piguet)와 함께 바로크는 물론 르네상스와 중세 음악을 아우르는 몇 개의 중요한 녹음을 했다. 또한 카위컨 형제의 프로젝트 그룹이었던 라 프티트 방드(La Petite Bande)의 데뷔 음반인 륄리 『부르주와 귀족』과 캉프라 『우아한 유럽』에 참여했다. 에라토(Erato), EMI의 고음악 시리즈인 REFLEXE, 아르히프(Archiv), 독일 하르모니아 문디(DHM) 등 주요 레이블 녹음에 대부분 참여하면서 당시 태동하던 고음악 레코딩 산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놀라운 점은 바로크와 고음악에 정통한 레이블들조차도 비올라 다 감바 독주 음악의 잠재성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바소 콘티누오 연주자로서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함께 바흐 플루트 소나타 전곡 음반을 연달아 녹음할 정도로 주목할 만한 젊은 연주자로 자리매김했지만, 좀처럼 독주자로서의 기회가 나질 않았다. 바로 그때 미셀 베른슈탱(Michel Bernstein)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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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 『세상의 모든 아침』이 밝기 전에
미셀 베른슈탱은 겨우 스물서넛에 음반사를 시작하여 벌써 세 번째 레이블을 만든, 이미 전설적인 프로듀서였다. 1975년 초창기부터 갖고 있었던 고음악에 대한 열정을 극한으로 밀어붙여서 17세기 프랑스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레이블 아스트레(Astrée)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옛 음악 명수들, 블랑딘 베를레(Blandine Verlet), 홉킨슨 스미스, 그리고 누구보다도 조르디 사발을 영입했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순 없지만, 다른 레이블로서는 대어를 놓친 셈이었다. 사발은 1975년부터 불과 몇 년 사이에 중요한 비올 레퍼토리들을 모두 섭렵했다. 마랭 마레의 방대한 선곡집, 비올의 천사라는 마랭 마레와 대비하여 비올의 악마로 불린 경쟁자 앙트완 포르크래의 선곡집, 생트 콜롱브의 두 대의 비올을 위한 합주곡집, 흄(Tobias Hume)의 『Musicall Humors』, 다울랜드(John Dowland)의 『Lachrimae』, 프랑수와 쿠프랭의 비올 곡집과 여러 나라 사람들, 륄리 찬가, 코렐리 찬가, 왕궁의 콩세르 같은 실내악곡집 등 이제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표준 레퍼토리로 여겨지는 것부터 뒤 코로이(Eustache du Caurroy), 케 데르벨르와(Louis de Caix d’Hervelois), 드 마쉬(Demachy)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도 재발견했다.
사발 이전에는 프랑스 비올 음악을 연주회나 음반에서 다룬 경우가 드물었다. 설령 있더라도 다분히 박물관 유리관 안에 있는 유물 취급이었을 뿐, 비올이라는 악기의 섬세한 매력이 제대로 살아있는 연주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한 평론가는 비올라 다 감바가 다시 독주 악기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발은 이런 종류의 예측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증명했다.
아스트레 시절의 독주 음반들은 프랑스 독주 비올라 다 감바 음악의 매력을 처음 전해준 역사적인 연주이다. 몇 곡은 나중에 알리아 복스(Alia Vox)에서 다시 녹음하기도 했는데, 새로운 녹음의 완성도 높은 화려함조차도 젊은 시절의 소박하면서도 비올다운 매력이 가득한 음색과 생기 넘치는 예리한 보잉 앞에서는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그의 연주에는 그의 말마따나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스페인 종교음악을 더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 1987년 라 카펠라 레이알 데 카탈루냐(La Capella Reial de Catalunya)를 창단한다. 사발은 기악 연주자라는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세레롤스(Joan Cererols)나 모랄레스(Cristobal de Morales)의 『레퀴엠』 음반은 사발이 신비로움이 가득한 르네상스 스페인 합창 음악 최고의 해석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에스페리옹 20과 라 카펠라를 이끌고 아스트레와 EMI-리플렉스에서 『스페인의 기독교와 유대 음악(1450~1550)』, 『세르반테스 시대의 노래와 음악』, 『아르마다 시대의 음악』, 『몬세라트의 붉은 책』, 『시빌의 노래』 등 이베리아 반도와 유럽의 시공을 가로지르며 그 시대와 음악을 총체적으로 탐구하는 일련의 음반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탐구정신은 40년이 넘게 지난 바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89년 르 콩세르 데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을 창단하면서 1990년대에는 바흐 등 소위 주류 바로크 레퍼토리로 활동 영역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게 된다. 당시 연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악단의 이름처럼 진정 각 국가의 명수들이 모인 당대의 드림 팀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정력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사발이라는 이름도, 그가 연주하는 프랑스 바로크 음악도 아직까지는 전문가와 한줌밖에 안 되는 고음악 애호가들의 영역이었다.
바로 그때 『세상의 모든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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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 황금시대
원작자 파스칼 키냐르는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와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의 임원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프랑스 바로크 음악에 애정을 지닌 인물이다. 키냐르는 대본 작업을 하면서 알랭 코르노(Alain Corneau) 감독에게 친분이 있었던 사발을 추천한다. 사발이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점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삼총사는 음악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다.
『세상의 모든 아침』 사운드트랙은 다른 음악 영화들과 여러 면에서 차별화되었다. 선곡 측면에서 허구와 진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를테면 생트 콜롱브)과 이름 있는 작품(이를테면 쿠프랭의 르송)을 섞어 새롭고 낯설지만 이해하기 쉬우면서 즉각적으로 감정이 전해지는 사운드트랙을 빚어냈다. 키냐르 자신은 영화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영화와 원작을 모두 본 사람이라면 이미지와 음악이 얼마나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지 금방 이해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음반으로 프랑스 바로크 음악, 비올라 다 감바 음악의 아름다움을 접했고, 몇몇 음악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비올 주자 로렌 러드윅(Loren Ludwig)은 전자 기타를 만지작거리던 십대에 『세상의 모든 아침』을 보고 미래를 결정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의 성공에 힘입어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가 감독한 『Jeanne la Pucelle』에서도 기욤 뒤파이(Guillaume Dufay)의 미사 『Messe De L’Homme Armé』를 중심으로 한 중세 음악으로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 영화 자체의 난해함도 있고 음악이 상대적으로 더 생소한 면이 있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잔 다르크를 다룬 영화 중 가장 뛰어나고 독특한 것으로 평가되며 챙겨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발은 1998년 음반사 알리아 복스를 직접 설립하면서 음반사 경영에도 뛰어들었다. 기존 음반사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이베리아 반도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여러 시대와 문화권의 탐험이라는 일생일대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셀틱 비올』, 『인간의 목소리』, 『오스티나토』, 『라 폴리아』, 『니나 나나』 등 상업적으로도 꽤 성공한 음반들도 있어서 음반사 운영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카탈로그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옛 아스트레 음반을 재발매하여 애호가들을 기쁘게 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사발은 일찌감치 스콜라 칸토룸의 교수 자리는 내놓았지만, 마스터클래스 형태로 전 세계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중에는 바로크 음악과는 정말 거리가 먼 것 같았던 줄리어드 음대도 있다. 2009년부터 사발은 뉴욕 줄리어드 음대에서 워크숍을 열고 줄리어드 415라는 시대악기 앙상블을 객원 지휘하고 있다. 또한 사발은 해마다 바르셀로나에서 고음악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있다. 여기서 사발은 엄선된 젊은 성악가와 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대규모 합창곡들을 준비하는데, 2011년도 아카데미의 마지막을 장식한 연주회에서 바흐의 B단조 미사를 연주했고 알리아 복스에서 음반과 영상물로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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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 눈물, 귀환
2011년 바로 그 해 말 몬세라트 피게라스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바로 직전까지 무대에 섰기 때문에 음악 애호가들에게 그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더 큰 걱정은 사발이 상심 끝에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은퇴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마치 생트-콜롱브가 은둔해 버린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피게라스는 대체 불가능한 사발의 뮤즈(muse)가 아닌가. 수년이 지난 다음에도 사발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 바 있다 — 나는 좋은 가수들을 데리고 있지만 더 이상 몬세라트와 같은 영혼으로 부르는 가수는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발은 무덤 앞에서 홀연히 일어섰다. 아니, 그 이상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마치 생트-콜롱브가 음악을 위해 자기 자신을 태우라고 한 것처럼.
2013년 이후 사발은 시간과 공간, 동양과 서양, 종교와 문명을 가로지르는 인간 감정의 교류라는, 평생 천착해 온 주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음악의 근원을 더욱 파고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서양음악이라든가 고음악이라든가 하는 경계는 의미가 없다. 사발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음악은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영혼은 같은 것이다. 그는 아마도 서양음악계에서 유일한 보편적 음악인일 것이다.
최근 사발 예술의 한 축은 과거에도 자주 시도했던 것처럼 이베리아 반도에 기반을 둔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중심으로 음악을 풀어내는 것이다. 다른 축은 『동양과 서양』, 『아르메니아의 영혼』, 『발칸의 영혼』, 『이스탄불』, 『예루살렘』, 『춤과 노래』, 그리고 가장 최근의 『이븐 바투타』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가로지르는 사상과 문명, 문학과 음악 예술의 탐구이다.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과 평화』, 『노예의 길』과 같은 어두운 과거에 대한 고찰과 반성이다. 이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 이상으로 진정한 소통과 인류애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는 음악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언어라고 믿는다.
우리의 인식이 닿는 범위에서 그가 탐험하지 못한 영역은 어디일까? 한 인터뷰에서 바흐의 무반주 작품을 녹음하고자 하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그는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마지막에 남겨 놓은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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